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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1부 왕의 즉위식은 인정문에서 열렸다

2025-03-14 03:36:00 Source: Author:테마여행 Click:856
창덕궁 1부 왕의 즉위식은 인정문에서 열렸다

프로그램명

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내용

창덕궁의 정전(正殿)은 '인정전(仁政殿)'입니다. '정전'이라 함은 왕이 조회(朝會),창덕궁부왕의즉위식은인정문에서열렸다 즉 모든 신하들과 아침 회의를 열고 현안을 논의하여 결정하는 궁궐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참고로 경복궁의 정전이 근정전이지요. 창덕궁 인정전에서는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식과 왕실의 주요 행사가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중요하고 성대한 의식인 왕위 즉위식은 대부분 인정전이 아닌 인정문(仁政門)에서 행해졌습니다. (인정문은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연산군을 비롯해 효종과 현종, 숙종과 영조, 순조, 철종, 고종이 이곳 인정문에서 즉위식을 갖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궁궐의 가장 중심 건물인 인정전이 아닌 인정문에서 즉위식이 거행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를 영상으로 풀이했습니다.



창덕궁 2부 창덕궁의 청와대

프로그램명

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내용

보통 궁궐이라 하면 왕과 왕비가 사는 호화로운 주택을 떠올립니다.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자, 범인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담벼락 안의 궁전이지요. 그러나 조선시대의 궁궐이 단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지존의 위치인 왕과 신하, 때론 정적과의 치열한 정치의 현장이었습니다. 창덕궁의 편전(便殿)으로 왕의 공식 집무실인 '선정전(宣政殿)', 왕의 사적 정치 공간인 '희정당(熙政堂)'이 바로 오늘날로 치면 청와대의 대통령 집무실과 국무회의장인 것입니다. 오늘날 청와대는 '주택'의 의미보다는 '최고 통수권자의 지휘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요. 아마도 과거 선정전과 희정당이 그렇게 비쳐졌을 것입니다. 왕은 선정전과 희정당에서 수시로 신하들과 만나 정치를 논하고 정책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를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왕과 가장 가까운 곳에 해당 관청들 즉 '궐내각사'를 두었습니다. 조선 왕조 500년의 무대가 되었던 요동치는 정치의 현장, 조선시대판 청와대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창덕궁 3부 중궁전에는 용마루가 없다

프로그램명

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내용

왕이 사는 곳을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 했습니다. 겹겹이 문으로 막고 있어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란 뜻입니다. 왕비의 거처는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곳,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그곳을 '중전(中殿) 혹은 '중궁전(中宮殿)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창덕궁의 중궁전은 '대조전(大造殿'입니다. 원래 경복궁에 있던 왕비의 거처인 '교태전'을 헐어 창덕궁에 옮겨 지으면서 '대조전'이란 현판을 붙이면서 정해진 이름이지요. 그런데 대조전은 다른 건물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용마루'가 없다는 것이지요. 용마루란 지붕의 앞면과 뒷면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기와를 쌓아 낮은 담장처럼 만든 부분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에만 용마루를 두지 않은 까닭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비밀을 알아봤습니다.


창덕궁 4부 정조, 창덕궁에서 만나다

프로그램명

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내용

조선 제22대 왕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설치하라 명한다. 그리고 3개월 후 부용지 북쪽 언덕에 규장각이 완성된다. 이른바 조선 후기 르네상스의 첫 출발이었다. 이후 이 일대에 국내외 서적을 갖춘 서고와 특별도서관 등 규장각 부속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이곳은 정조를 중심으로 젊은 인재들이 새로운 학문과 문물을 배우고 익히는 중심 공간이 된다. 이후 규장각은 인정전 서쪽으로 옮겨지고 다른 건물 역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지만 창덕궁 곳곳에는 아직도 정조가 꾸었던 꿈과 야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창덕궁으로 가서 정조를 만나보자.


창덕궁 5부 조선의 왕들, 후원에 취하다

프로그램명

이야기문화유산-7분다큐

내용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어졌으나, 오히려 조선의 왕들이 더 오래 머무르며 사랑했던 궁궐 창덕궁. 그 큰 이유 중 하나는 가장 아름다운 후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산과 응봉에서 뻗어내린 넓은 산자락에 수백년에 걸쳐 만들어지고 세워진 연못이며 정자들. 하지만 그들은 그 어느 하나 화려하거나 위압적이지 않은, 한국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나 창덕궁 후원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이곳이 단지 휴식 공간이 아니라 왕과 왕비가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는 공간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조선의 왕들이 뽑았던 창덕궁 후원의 10대 절경, 그 속에 비밀이 숨어 있다.



창덕궁 박시백의 세계유산순례

프로그램명

박시백의 세계유산순례

내용

조선시대, 숱한 드라마가 펼쳐졌던 창덕궁.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 다음으로 지어졌지만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했던 왕들이 많았다. 많은 왕들이 창덕궁에 머물자 자연스럽게 조선 왕조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왕실이 사랑한 궁궐, 왕실의 안식처였던 창덕궁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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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해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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